대중의 눈에 비친 헌법재판소는 9명의 헌법재판관이 법대에 나란히 앉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엄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선고 이면에는, 판결의 뼈대가 되는 '사실관계'를 조각하기 위한 치열하고 은밀한 실무 과정이 숨어 있다. 권한쟁의심판이나 탄핵심판처럼 얽히고설킨 쟁점을 풀어내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가동하는 가장 핵심적인 무기, 바로 '수명재판관(受命裁判官)' 제도를 통한 사실인정 기법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1. 9인의 합의체가 직면한 사실조사의 딜레마
헌법재판은 단순히 '법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법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이 되는 과거의 '사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구성해야 한다.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접수되는 대형 사건들의 경우, 검토해야 할 수사 기록과 행정 문서가 트럭 단위에 달한다는 점이다. 9명의 재판관 전원이 매번 현장에 출동하여 서류를 뒤적이고 수십 명의 증인을 직접 신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국가 최고 사법기관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서면 심리에만 의존하자니 당사자들이 제출한 왜곡된 정보에 휘둘릴 위험(정보의 비대칭)이 크고, 그렇다고 모든 증거조사를 전원재판부에서 진행하자니 심리가 무한정 지연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 실체적 진실의 선봉장, 수명재판관의 등장
이러한 딜레마를 타개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법과 심판규칙이 마련한 돌파구가 바로 수명재판관 제도이다.
수명재판관이란, 전원재판부의 명을 받아 특정한 증거조사나 심판준비절차를 전담하여 수행하는 개별 재판관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해당 사건의 내용을 가장 깊이 파악하고 있는 주심재판관이 이 역할을 맡는다. 수명재판관은 헌법재판의 '최전선'에 투입된 선봉장과 같다. 이들은 본격적인 구두 변론이 열리기 전에 당사자들을 소집하여 핵심 쟁점을 압축하고, 불필요한 증거를 쳐내며, 필요한 경우 검찰청이나 법원에 직접 방문하여 장소 현장 서증조사를 진두지휘한다.
수명재판관이 주도하는 이 과정은 재판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방대한 모래밭에서 사금(결정적 증거)만을 걸러내어 9인 전원재판부의 평의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올려놓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전원재판부는 소모적인 사실관계 다툼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본질적인 헌법적 가치 판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3. 실무적 관점: 수명재판관을 설득하는 자가 재판을 지배한다
헌법재판의 당사자나 대리인 입장에서 수명재판관 제도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수명재판관의 심증이 곧 전체 재판부의 판단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실무 현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심판준비절차나 수명재판관의 증거조사 단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나중에 전원재판부 구두 변론에서 멋지게 뒤집으면 된다'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다. 수명재판관이 현장에서 확인하고 채택한 증거, 그리고 그가 정리하여 전원재판부에 보고한 '조사 결과 보고서'는 판결문 작성의 핵심 뼈대가 된다. 한 번 굳어진 사실관계의 프레임을 전원재판부 단계에서 뒤집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가깝다.
따라서 당사자는 수명재판관이 주재하는 준비 기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모호한 인터넷 자료나 비공식적인 정황 증거 대신,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결정적 물증'을 이 단계에서 반드시 현출시켜야만 헌법재판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결론 및 시사점
수명재판관의 사실인정 기법은 거대하고 느린 헌법재판소라는 조직을 정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엔진이다. 9인의 합의체가 가지는 집단지성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사실관계 확정의 신속성과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법부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제도라 할 수 있다.
권리 구제를 위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자라면, 이 거대한 사법 시스템이 어떤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는지 그 이면의 실무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비로소 승리의 길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법률 정보 면책 문구: 본 칼럼은 헌법재판소법, 심판규칙 및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수명재판관 제도의 실무적 기능과 사실인정 과정을 분석한 전문 정보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실제 심판 절차는 사건의 성격과 재판부의 지휘권 행사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본 내용은 참고 목적의 학술적 견해이며, 개별 소송에 대한 공식적인 법률 자문이나 확정적 가이드라인이 아님을 밝힙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