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이 국가기관이나 타 지자체에 의해 침해당했을 때, 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권한쟁의심판이다. 하지만 법리적 명분이 아무리 훌륭해도 '증거'가 빈약하면 패소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헌법재판의 현실이다. 특히 거대한 행정 조직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지자체가 어떻게 주도권을 쥐고 결정적 증거를 법정으로 끌어올 수 있는지, 그 실무적인 돌파구를 짚어보겠다
1. 기울어진 운동장 : 정보 독점과 입증의 한계
권한쟁의심판은 시작부터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부처나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기초지자체의 입장을 가정해 보자. 자치권 침해를 입증하려면 상대 기관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 관련 예산의 집행 내역, 행정 처분의 구체적 근거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순순히 내어줄 리 만무하다. "국가 기밀이다", "행정 내부 자료다"라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거나 교묘하게 핵심을 비껴간 자료만 제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무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지자체가 이러한 상대 기관의 비협조에 가로막혀 인터넷 기사나 불확실한 정황 증거만으로 변론을 이어가다 결국 입증 부족으로 패소하는 경우다. 헌법재판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감정의 장이 아니라, 차가운 데이터와 문서를 다루는 증거 전쟁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공격적 증거 수집의 양대 산맥: 사실조회와 기록송부촉탁
상대방이 굳게 닫아건 정보의 빗장을 푸는 헌법재판소법상의 공식적인 열쇠가 바로 '사실조회'와 '기록송부촉탁'이다.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첫째, 핀셋형 사실조회(제32조)의 활용
상대방에게 막연하게 "관련 자료를 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지자체 법무팀은 상대 기관이나 제3의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특정 통계', '특정 일자의 회의록', '특정 부서의 내부 지침'을 핀셋처럼 정확히 지목하여 재판부에 사실조회를 신청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이름으로 발송된 구체적인 사실조회 요구는 상대 기관에 강력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며,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기록송부촉탁을 통한 우회 타격
권한쟁의와 관련된 행정소송이나 수사가 다른 법원 및 검찰에서 병행 중이라면, '기록송부촉탁'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상대 기관이 직접 내놓지 않으려는 정보라도, 이미 타 사법기관에 제출된 수사 기록이나 공판 기록을 헌법재판소로 통째로 가져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의 방어막을 우회하여 핵심 증거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3. 재판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증거 현출의 기술
자료를 확보했다고 끝이 아니다. 수집된 방대한 자료 속에서 '우리의 자치권이 어떻게 침해되었는지'를 재판관의 눈높이에 맞춰 떠먹여 주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증거라도, 결정문의 '사실인정' 파트에 인용되지 못하면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증거를 제출할 때는 단순히 서류 뭉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제출된 사실조회 회신서 제3쪽의 수치를 보면 상대 기관의 처분으로 인해 우리 지자체의 예산 권한이 명백히 침해되었음이 입증된다"는 식으로 증거와 주장을 1:1로 매칭시켜야 한다. 특히 심판준비절차나 수명재판관의 현장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객관적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브리핑하여 쟁점을 조기에 선점하는 것이, 곧 최종 결정문 상에 지자체의 주장이 아로새겨지게 만드는 비결이다.
마치며
지방자치의 훼손을 막는 권한쟁의심판은 '부지런한 자'만이 승리할 수 있는 험난한 과정이다. 지자체는 상대방의 선의에 기대는 순진한 태도를 버리고, 헌법재판소의 공식적인 증거조사 권한을 십분 활용하는 치밀한 공격수로 거듭나야 한다. 철저한 사실조회와 기록 확보만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치권을 수호하는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될 것이다.
※ 법률 정보 안내: 본 칼럼은 헌법재판소법의 증거조사 절차와 지자체의 권한쟁의 실무에 관한 일반적·학술적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헌법재판의 진행 과정과 증거 채택 여부는 개별 사건의 쟁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 정보는 특정 사건에 대한 공식적 법률 자문으로 활용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업데이트: 202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