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이고 극단적인 수단이다. 정당해산심판은 헌법 수호를 위한 '방어적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이지만, 동시에 집권 세력이 눈엣가시 같은 야당을 제거하는 합법적 탄압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양날의 검과 같은 재판에서 절차의 공정성을 지켜내는 핵심 안전장치가 바로 증거법이다. 정당해산심판이 왜 단순한 민사 소송을 넘어 '준형사절차(Quasi-Criminal Procedure)'로서의 엄격함을 갖추어야 하는지, 헌법재판 실무의 시각에서 그 본질을 파헤쳐 보겠다
1. 민사소송법 준용이 낳는 치명적 위험성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정당해산심판 절차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의 생사를 가르는 재판에 민사 소송의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민사소송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자백의 구속력'이다. 즉,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면 법원은 그 주장이 사실인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그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정당해산심판에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극단적으로 말해, 정부가 특정 정당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해산을 청구했는데 해당 정당의 대표가 압력에 못 이겨(혹은 모종의 거래로) 이를 자백해 버리면, 헌법재판소는 위헌 여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조사하지도 않고 정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당의 존립은 단지 그 정당에 속한 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지지한 수많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권과 직결된다. 따라서 아무리 당사자가 위헌적 목적을 자인하더라도,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며 국가 권력의 개입이 정당한지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끝까지 파헤쳐야(직권탐지주의) 한다. 이것이 정당해산심판에서 민사소송법의 기계적 준용을 경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2. 준형사절차의 도입 : 국가 권력에 채우는 족쇄
정당해산의 파급력은 개인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 공동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절차의 엄격성 역시 형사 재판에 버금가야 한다.
학계와 헌법 실무계에서는 정당해산심판을 단순한 행정 소송이 아닌 '준형사절차'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절차의 중심축을 피청구인(해산 위기에 처한 정당)의 방어권 보장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입증 책임(Burden of Proof)'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재판에서는 양측이 대등하게 증거를 제시하며 싸우지만, 준형사절차적 관점에서는 국가(정부)가 해당 정당의 위헌적 목적과 활동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Beyond a Reasonable Doubt)' 완벽하게 증명해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제출한 증거가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위헌성이 명백하지 않다면, 형사 재판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처럼 정당의 해산을 기각해야 마땅하다. 이는 소수 정당을 다수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강력한 사법적 방패가 된다.
3. 증거의 문턱을 높여라 : 위법수집증거 배제와 전문법칙
준형사절차적 성격은 법정에 제출되는 증거의 자격(증거능력)을 따질 때 가장 날카롭게 빛을 발한다.
민사소송에서는 불법으로 녹음한 파일이나 도둑질해 온 서류라도 어느 정도 진실에 부합한다면 판사의 재량에 따라 증거로 쓰일 여지가 있다(자유심증주의). 하지만 정당해산심판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막강한 수사기관을 거느린 정부가 영장주의를 위반하거나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수집한 증거(위법수집증거)는 법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해야 한다. 또한, 전언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문건(전문증거) 역시 형사소송법 수준의 깐깐한 필터를 거치게 하여, 오직 합법적이고 검증된 증거만이 정당의 위헌성을 논하는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결국 '절차'다
정당해산심판은 헌법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둔 비상벨이지만, 그 벨이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무분별하게 울리지 않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향후 관련 심판규칙을 제정하거나 재판을 진행할 때, 단순한 민사소송법의 준용을 넘어 형사소송법의 엄격한 증거 원칙들을 유추 적용하는 '준형사절차'의 틀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 피청구인에 대한 철저한 방어권 보장과 국가를 향한 엄격한 입증 책임의 요구만이, 정당해산심판이라는 극단적 제도가 정치적 탄압 수단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고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 학술 및 실무 안내: 본 칼럼은 헌법재판 실무 연구 및 정당해산심판의 절차법적 쟁점에 관한 학술적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정당해산심판에서 형사소송법의 유추 적용 범위와 증거능력의 엄격성은 재판부의 헌법적 결단과 해당 사건의 성격에 따라 구체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리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공식적인 법률 해석이나 구속력 있는 지침이 아님을 밝힙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6. 2.)